나는 왜 감정에 서툴까?
'감정'이라는 놈에게 한 번씩 휘둘리고 나면 에너지는 완전히 바닥나 버리고 관계마저 삐걱 거린다.
다음은 책의 오프닝에 나온 선택지다.
A 감정을 드러내서 좋을 게 뭐 있나요? 서로 마음만 상하고 관계만 틀어지지요. 감정은 참아야 하는 거잖아요.
B 억울해서 어떻게 계속 이러고 있어요? 얘기할래요. 참는 데도 한계가 있지. 전 못 참아요.
나는 B의 주장대로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는 쪽이었지만 조금 서툴렀던 표현방식 때문에 친구를 잃은 경험이 있다.
지금도 많이 모자라지만 학창시절엔 정말로 지금보다 더 감정 통제를 못하는 학생이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때의 내 성격은 참 옹졸했던 것 같다.
때는 고등학교 3학년 초기, 당장 올해 안에 마주치게 될 수능 장과 진로 고민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적이었을 것이다.
나에게는 서로의 집까지 놀러 다닐 정도로 친했던 친구가 있다. 지금 생각하면 나쁜 기억만 남아있지만, 그땐 정말 친하다고 생각했었다.
평소에도 오묘한 기운이 풍기긴 했었다. 뒤에서 가다가 신발 뒤축을 밟았다거나, 말을 하다 침을 튀겼다거나, 서로 장난치다가 살짝 세게 때렸다거나. 이 때마다 적당히 넘어가는 듯하면서도 그 순간만큼은 살벌했던 것 같다.
이런 시한폭탄과도 같은 '친우 관계' 가 터진 건 우습게도 아주 별거 아닌 일에서였다.
매점을 가서 음료를 사서 먹다가 실수로 종이 팩을 눌러 빨대로 음료가 발사되어 친구 옷에 묻어버렸는데, 처음엔 미안하다 미안하다 했지만
계속 짜증을 내며 끝도 없이 투덜대는 것을 참지 못해 한마디 해버린 게 화근이었다.
"아 어쩌라고!! 미안하다 했잖아 세탁비라도 물어줘야 되는 거냐? 나보고 어쩌라고 이미 묻은걸???"
한 토시도 틀리지 않고 이대로 말을 뱉었다.
하지만 이런 싸움은 전에도 종종 있었고 그냥 적당히 서먹서먹하다가 넘어가는 정도였는데, 얘도 되게 참은게 많았던듯 했다.
네가 잘못해놓고 왜 나한테 화를 내느냐는 둥 하며 굉장히 크게 화를 내고 마지막으로 한마디 남겼다. "니 오늘부터 나랑 마주치지 말자 꼴 보기싫다."
사실 부끄럽지만 나는 지금까지도 얘가 정말 심했다고 생각한다. 그나마 글로 표현해서 조금 누그러진 것이지 이 상황과 멘트를 다시 떠올리니깐 기분이 심히 언짢아졌다.
이 사건이 발생한 이후로는 정말 그 애가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지리적으로는 바로 옆반이지만 나 또한 절대 그 반으로 놀러가지 않은 것도 마주치지 않은 이유가 되겠다.
어느 순간은 다시 화해하고 전처럼 친구로 지내볼까... 했던 적도 있지만 다시 한번 생각하면 괘씸해져서 그런 생각이 말끔히 없어졌었다.
쓰다보니 너무 자세히 적어놓은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지만 어쩔수 없다 이미 벌려놓은 일이고 주워담을 수 없는 물과 같은 감정을 흘려버렸는데 더 이상 어쩌겠는가.
이 일을 책에 나온대로 풀어보면 나와 친구가 싸웠을 때 친구는 나에게 받은 분노가 50 정도라고 할때 나는 '별거아닌일' 이라고 생각하며 내가 준 분노가 30이라고 생각한다.
친구는 내가 풀어주려하는 30정도의 분노만 누그러뜨리고 20의 분노는 그대로 꾹꾹 참아내게 된다. 이게 계속 반복되다 보면 꾹꾹 눌러놨던 분노가 터지게 된다.
내가 친구와 싸운날, 친구는 그동안 눌러왔던 20씩의 분노를 모아 엄청나게 많은 량의 분노를 나에게 뿜었을 것이고 나는 평소와 같이 30이라 생각하며 친구가 너무 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해 벌어진 일을 곱씹어보며 나는 그 이후로 아무리 싫은일이라도, 혹은 좋은일이라도 한템포 쉬고 적당히 감정이 사그러든 후 발하려고 노력하였다.
감정을 사그러뜨리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나와 있었다.
일전에 읽은 "화성에서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에서 본 화성인의 감정해소법인 혼자가 되어 자신이 하고싶은 것을 하며 잊어가는 '동굴에 들어가기' 도 있었고,
아주 기초적인 숫자를 거꾸로 세며 심호흡을 하는 방법도 있었다.
처음에 언급한 선택지에 대해 다시 되짚어보자.
A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안으로만 곱씹어 해소하는 부류.
B는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고 해소하는 부류.
두 방법 모두 완전히 틀린건 아니지만 나는 이 글귀를 보며 두 방법 다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책을 읽어갈 수록 책의 저자도 이것을 좀 더 확실하고 부드럽게 바꾸는 방법을 적어놓았다.
A의 경우엔 감정을 전혀 드러내지 않고 마음속에 꾹꾹 눌러담는데, 이렇게 되면 나와 친구의 일 처럼 그동안 쌓아놓은 감정의 저수지가 한번에 터져버리는 일이 있을 수가 있다고 본다.
B의 경우엔 감정을 느꼈을 때 참지않고 그대로 표현한다고 하는데, 이런 경우엔 그 즉시 표현한 B 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감정까지 상하는 일이 될 수 있다.
아래로는 책에 나오지 않은 내 생각이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간단하다. 분노라는 감정은 잔가시가 많은 통나무 의자와 같아서 그대로 전달하게 되면 앉게 되었을 때 잔가시에 다치게된다.
감정을 느꼈을때 바로 표현하지 않는다. 적당히 곱씹어서 상대방은 왜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했을까. 혹시 내가 잘못생각해서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진 않을까?
하며 품에 안겨줄 수 있을 정도로 사포질을 한다. 적당히 부드러워 졌을때 이곳에 앉아서 내가 받았던 감정을 느껴보라고 건내주면 분명 트러블 없이 서로의 감정을 해소하게 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내가 즐겨보는 서나래 작가의 네이버웹툰 "낢이사는이야기" 에서였다.
크게 만화에는 만화의 주인공이자 작가 자신인 '낢' 과 작가의 남자친구였고, 이제는 남편인 '이과장' 두 캐릭터가 나오는데 한 에피소드 에서는 커플간의 싸움을 다룬 것이 있었다.
서로 싸우게되면 '낢' 의 경우엔 B와 같이 그 순간의 감정을 마구 쏟아내는 폭포수와 같아 '이과장' 을 만나기 전까진 화가 난 순간 마구 짜증을 냈다고 한다.
하지만 '이과장' 의 경우 전혀 반대의 방법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다.
1. 일단 그 순간은 조용히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다.
2. 혼자서 그 상황을 되짚어보며 감정을 정리한다.
3. 나는 이런데 네가 이래서 화가났다. 라는 식으로 정리된 감정을 상대방에게 전달한다.
이 책은 보면서 감정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물론 뒤로 갈 수록 자가테스트로 내용이 가득차있어 심리테스트북같은 느낌을 받긴 했지만 적어도 책을 정독해볼 만큼은 좋았다.
지금까지 감정들 중 분노라는 감정만 언급하긴 했는데 감정에는 많은 종류가 있다. 희(喜), 노(怒), 애(哀), 락(樂), 애(愛), 오(惡), 욕(慾) 등
나는 최근들어 그중에서도 한 감정을 가공하는 중이다. 잔가시가 없도록 정성스레 사포질을 하고 그냥 전달하면 너무 허전할까 싶어 장식도 넣어주는 중이다.
끝으로 이 감정이 부디 멋지고 좋은 나무 의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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