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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_산업지원인력_체험수기

훈솔 2017.06.02 03:04

나의 발전에 디딤돌이 되어준 병역특례

내가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하기까지의 여정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하여

 

2년 하고도 10개월. 절대 줄어들지 않을 것 같던 복무 기간이 이젠 정확히 반을 수행하고 17개월뿐이 안 남았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찰나겠지만 당사자인 나에게는 절대적으로 길었던 17개월은 사회경험이 전혀 없던 나에게 굉장히 많은 경험을 안겨준 시간이었다.

 

어릴 적부터 확고하게 지켜온 나의 꿈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컴퓨터에 빠져 살았다. 원래 IT 직종으로 근무하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조립컴퓨터는 나의 변신 로봇 이었으며 그 컴퓨터에서 돌아가는 무수한 프로그램들은 나의 레고블럭 이었다.

워낙 일찍 접한 탓인지 다른 아이들보다 전자기기에 대한 이해도는 출중했고 중학교 고등학교를 올라오며 나는 자연스럽게 컴퓨터와 하루 종일 함께하는 일을 하며 그 재주로 산업기능요원 복무까지 하게 된다.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하게 된 계기


산업기능요원으로써 복무하게 된것은 사실 누구나 그렇듯이 도피가 목적 이었다. 개발자라는 직업은 기술적인 유행에 굉장히 민감해야 한다.

최신 개발 트랜드를 놓치게 되면 청동기 시대에 돌도끼를 쓰는 것 마냥 효율도 떨어지고 힘도 배로 들기 때문에 하루도 빠짐없이 요즘 기술 트랜드를 찾아보고 사용해보며 스스로를 개발해 나가야 하는데, 2년이나 트랜드를 접하지 못하고 사회와 동 떨어져 있으면 그 공백 기간을 따라 잡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몹시 힘들다. 실제로 군대를 다녀와서 트랜드를 따라가는 것에 실패하여 진로를 변경한 선배들도 속속들이 보아 왔다.

시작은 이렇듯 좋지만은 않았다. 내가 더 좋은 선택지가 있음에도 내가 겪을 2년이라는 공백 기간을 참을 수가 없을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병역특례가 가능한 업체로 취직을 하였고, 나는 사회로의 한 발자국을 내딛었다.


생 초짜 사회초년생이 야생에서 살아남기까지


사회 초년생인 나에게는 난데없이 던져진 직장이 절대 만만치 않았다.

내가 자기개발에 나태해져도 학교 때 처럼 아무도 나를 혼내주지 않았고 어떤 잘못을 해도 결국에는 용서해주던 선생님은 사회 어디에도 없었다. 내 것은 내가 챙겨야 했고 내 허물은 내가 직접 숨겨야 했다.

 

너무나 차갑고 무서웠던 그 와중에 힘이 되어준 사람들은 같은 시기, 같은 직장에 취직하여 내 입장을 그 누구보다 잘 이해해줄 수 있는 입사동기들이였다.

선영, 연정, 민정, 효석. 내가 훈련소 소집 명령을 받아 한 달 동안 훈련을 받고 있을 때 정성스레 편지들을 보내주고 내가 회사 문제로 고민을 할 때마다 언제나 진심으로 상담에 임해준 첫 회사의 입사동기들은 지금도 한 달에 서너 번씩 모여 웃고 떠드는 제일의 친구들임은 단 1%도 부정하지 않겠다. (170601일 훈련소 입소한 효석, 파이팅!)

 

우울한 시작, 벗어나려는 발버둥


첫 직장은 별로 만족치 못했다. 직원들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 보다 안정적이게 머물러 있는 것을 추구한다며 기술적인 발전을 꺼려하였으며 개발자에 대한 회사 차원의 지원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심지어 군인한테 총이나 마찬가지인 개발용 프로그램을 요청해도 구입을 고려해주지는 못할망정 불법 복제 프로그램을 건넸으니 말은 다했다.

 

이것뿐이면 정말 다행일 텐데 가장 최악이었던 것은 처음 채용하면서 약속한 병역특례는 TO도 준비 되어있지 않았고 병역특례를 해준다고는 했지만 바로 해주진 않고 너 하는 거 봐서 해주겠다.”는 그 뻔뻔한 변명아래 순진했던 나는 1년이라는 시간을 낭비한 후에야 산업기능요원으로써의 복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내가 현실을 도피하고자 처음 선택한 길은 전문 동아리에 가입하는 것 이었다. 여러 동아리들을 찾아보다가 개발자와 디자이너들이 모여 팀을 이루고 정해진 기간 동안 프로젝트 하나를 완성시키는 동아리 "NEXTERS" 에 지원하여 활동하게 되었다. 활동은 굉장히 만족스러웠고 심지어 두 번째 활동 때는 운영진 기술부문을 도맡아 먼저 취업한 사람으로서 나이는 나보다 많지만 졸업 후 취업 준비를 하고 계시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조언도 드리고 현재 일하고 있는 분야에 대하여 기술 세미나의 스피커로 참석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절망적인 것은, 동아리 활동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당연히 회사 생활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위험부담을 모두 떠안고 앞으로 나아가다


산업기능요원은 대체적으로 이직을 거의 하지 않는다. 이직 준비를 위해 현 직장을 그만두고 준비 기간을 가질 수 있는 보통 사람들과 다르게 산업기능요원은 회사에서 군 생활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닌 이상 사직서를 내는 순간 현역으로 복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일도 하면서 이직 준비도 해야 한다는 것이고 안 그래도 결재를 받으러 가면 마구 눈치를 주는 상황에 면접을 보러가기 위해 꾸역꾸역 연차를 신청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런 위험부담을 안더라도 나는 더 이상 불우한 근무환경은 참을 수 없었다. 내가 가진 개발자로써의 역량은 이런 대접을 받으면 안 된다고 굳게 마음을 먹은 순간부터 이직 준비를 시작했다. 주말에도 포트폴리오 준비를 위해 밤을 새고 거울을 보고 면접 연습을 하였으며 어떤 회사가 다니기 좋은 회사인지 열심히 연구하였다.

 

결전의 날, 두 번째 도전


여러 시도 끝에 괜찮게 봐온 회사의 최종 면접에 합격하게 되었고 드디어 결전의 날을 맞이하게 된다. 나는 불평불만 없이 성실하게 일 잘하는 이미지였나 보다. 너무나 뜻밖이라는 반응으로 면담을 하자는 부서장, 전후사정을 얘기하고 이직하겠다고 말을 했을 때는 정말 요즘 유행어로 표현하자면, 사이다였다.

 

그렇게 올려달라고 말을 해도 올려주지 않던 연봉을 올려준다는 얘기부터, 원하는 것을 요청하면 바로 구비 해주겠다는 말까지. 만약 내가 1년 반 동안 겪어보지 못하였다면 홀라당 홀려서 이직을 포기하게 될 만한 구미당기는 제안 들이였다. 바보도 아니고 1년이 넘도록 해주지 않은걸 바로 해주겠다는 말을 누가 믿겠는가. 그렇게 첫 직장을 그만두었다.

 

두 번째 직장을 고른 기준은 단순히 '개발문화' 만 보고 골랐다.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최신 트랜드에 대해 얼마나 민감한가, 개발자에 대한 지원은 얼마나 이루어지고 있는가, 제품에 대한 히스토리가 제대로 관리되고 있는가. 등 개발자로써 근무하며 겪을 여러 가지 문제들을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가 바로 내가 생각하는 개발문화다. 외부인들에게 내부에서 고민했던 이슈를 공유하는 기술 블로그가 있었다. 서류 지원 양식이 굉장히 유저 친화적이었다. 무엇보다 사용자들에게 압도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결론만 말하자면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충분히 좋은 곳이기에 꽤 만족하고 있다.

 

앞으로의 여정, 내가 바라는 산업기능요원의 미래


나는 끝없이 발전해 나가는 것을 즐긴다.

올해 9 월이 되면 모 대학교의 야간으로 운영되는 학과에 지원해볼 예정이다. 산업기능요원은 야간, 사이버 대학에 한하여 수학을 허용하고 있기에 이런 좋은 기회는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언제나 스스로의 가치 향상뿐만 아니라 앞으로 나와 같은 길을 걸어갈 사람들에게 이왕이면 꽃길을 걷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앞으로 나 뿐만이 아닌 다른 사람들도 위험부담을 못 이겨 현실에 안주하려 하지 않고 스스로 개선하며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면 산업기능요원은 단순히 현역 복무를 도피하는 역할뿐이 아닌 사회의 구성원으로써의 일을 훌륭하게 수행하여 당사자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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