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 아이디어가 창업 아이템은 아니었다.
그럼 왜 이 아이디어로 해왔냐고 스스로에게 묻는다면 당시에 내가 하려고 했던것 중 가장 '될만한 놈' 이었기 때문이다.
무조건 시작했다.
이 시점의 나는 무척이나 행동에 고파있었는데 무려 200만원을(ㅋ) 지불하고 시작했던 창업캠프를 스스로 탈주하게 된 사연이 나의 무언가 해보고자 하는 욕망에 불을 지폈다.
그리고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주변 사람들에게 뭐라도 해내고 있는걸 보여주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나에게 찾아온 한줄기 아이디어
이 한바탕의 첫 발자국은 내가 가지고 있던 흐릿한 아이디어들을 구체화 시키는것 부터 내딛었다.
게임 커뮤니티를 만들어보자. 평판 플랫폼을 만들어보자. 북클럽은 어떨까?
아니다. 좀 투자받을만하고 있어보이는 것 없을까?
그래, 내 피같은 컴투스(078340) 의 등락을 운전했던 이슈가 있었잖아.
그리고 뇌리에 깊게 박혔던 대한항공(003490)의 경영권 분쟁,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었잖아.
최근에 핫한 에스엠(041510)은 어떻고, 진짜 나는 예상도 못했던 결과가 나왔었지.
주주들이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
(주주행동주의 - 한경닷컴 사전)
내가 찾은건 바로 주주행동주의 라는 키워드였다.
당시의 "내가 생각하기에는" 주주들은 안타까웠다.
왜냐, 매매하고있는 주식에 의결권이란것을 잘 활용하면 회사의 경영에도 영향을 줄 수 있고 이를 주주에게 좋은 방향으로 활용해서 주주환원으로 유도하면 길게 보아 큰 이득을 얻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이 간단하지만 좋은걸 안한다는게 의아했던 것이다.
주주행동주의라고 부르는 그것인데 하지만 이 정신을 토대로 주주총회에서 무언가를 하는 사람, 혹은 단체는 잘 찾아보기 힘들었다.
(사실 이 시점에서 나는 왜 그럴까를 먼저 찾아보고 시장을 제대로 조사해봤어야 했다. ..)
그나마 그걸 하고 있는게 주주행동주의펀드사들이었고, 이 펀드사들은 주주들에게 의결권을 위임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아 얘네들은 의결권이 필요하구나!"
성공할거야!
와 정말 기발한 아이디어야! 이건 성공할거야!
이 아이템이 고객들에게 필요한건지, 필요하면 어떤 고객들에게 필요한지, 왜 써야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돈을 벌건지? 펀드사들이 의결권을 필요로한다! 이건 니즈가 확실하니깐 의결권을 구해다 주면 되겠구나~
그럼 의결권은 누가, 왜 우리 플랫폼에 제공해줄까?
맞아 내 서비스는 확실한 리턴을 줄거야, 리워드를 주는거야
리워드는 뭘로 줘야하지?
앱테크! 바로 이거야 사람들은 작은 돈이라도 진짜 돈이 나온다면 쓴다는걸 지금까지 봐왔잖아!
그렇게 나는 먼저 비즈니스의 수익흐름을 그렸다.
아까보다 더 될 것만 같다. 말도 안된다, 나 벌써 성공하는건가?
내친김에 내 사업을 소개하기 위해 이런 사업의 세부내용들을 모두 모아놓은 IR 자료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너무 신이났다. 내가 생각한대로 막힘없이 만들어졌고, 심지어 주위에서는 마구 응원해줬다.
응원 뿐만인가? 직접적인 지원도 해주더라. 나는 꽤나 이른 시점에, 클라우드 서버 지원을 받게 되었다.
https://aid.bizbot.kr/biz-page/12767750
지원 범위는 무려 kt cloud 크레딧 1800만원어치 (서버가 무한이라구?)
그 이외에도 마이데이터 서버 구축을 위한 컨설팅, 서버구축 컨설팅 뭐 지원 어쩌고 ...
교육도 해준다고 하길래 들으러 가고 각종 협약도 하다보니 나는 이 시점에서 이미 김칫국을 오마카세로 들이키고 있었다.
이렇게 꽤나 본격적인 시작에 용기마저 충만해졌고
내가 가지고 있는건 뭐든 만들어낼 수 있는 기술이요 가장 잘하는것도 만드는 것이니!
다 만들고서야 나는 아차 싶었다. 나 이거 왜 만들었지? 아무도 안봐주네?
머리속으로 그리고 있는 디테일은 이미 극에 달해서 더 이상 이보다 완벽할 수 없는 와중에 막상 내 에고를 모두 쏟아놓은 상태. 근데 이거 만든다고 쓸 사람이야 있나? 그저 만들면 써주는 그런 온실같은 환경은 이제 나에겐 없었다.
가설 되짚기
우선 좀 정신을 차리고 내가 내렸던 가설부터 다시 짚어가기 시작했다.
첫번째부터 짚어보자,
가설 1. 주주행동주의를 표방하는 펀드사들은 소수주주들의 의결권을 필요로 할 것이다.
이 가정을 가지고 첫번째로는
C모 투자사 대표님과의 미팅.
우리나라 회사들은 대부분 회장님이 지분의 대부분을 가지고 떡하니 버티고 있어 의결권을 아무리 모아도 딱히 효과가 없을 것이다. 만약 굉장히 많~이 모은다고 하더라도 당신이 모은 것 보다는 관계자들의 지분이 훨씬 클 것
에이~ 세상이 변하고 있다구요. 소수주주들이 힘을 모아 그 거대하던 이수만대표도 끌어내리는 시대인데요?
대표님은 나에게 분명 빨간약을 주셨지만 애써 부정하며 입에도 대질 않았다.
그리고 F 모 펀드사의 상무님과의 미팅.
이 미팅은 목적 자체가 파트너로써 함께 하자는 제안을 드리기 위해 제안드렸고, 해외에 계시는 특이사항을 감안하여 비대면 PPT 를 진행하였었다.
내가 기대했던건, 기관의 의결권을 끌어오는것이었다. 소수주주들 의결권 퍼센테이지는 쓸모가 없다. 기관이 매매하는 양 정도가 되어야 비로소 의결의 과반을 차지할 만큼의 숫자를 확보할 수 있다. 이 의결권을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 왔을때는 대부분 여의도에 연락을 돌려서 해결하고는 한다.
그럴수가 ... 그럼 지금 주주행동주의 정신 아래에 이런저런 캠페인을 하는 사람들은 뭔가요?
그건 쇼다. 그냥 적대적 M&A 를 진행해버리거나 경영권을 침해하는 모양새로 들어가면 될 것도 안된다. 소수주주들의 뜻을 받든다는 모양을 취해 정당성을 얻는것이다.
아... 드디어 내 눈을 가린 VR 글래스가 벗겨지기 시작했다. 내가 그리던 찬란한 무언가는 내 생각랜드에만 존재하는 것이었고 당연히 이 시점에서 뭔가 진짜로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렇게 마지막 E모 투자사 대표님과의 미팅
나는 응원한다. 나 같이 돈 놓고 돈버는 사람도 있으면 이런 올곧은거 하는 사람도 있어야지.
ㅋㅋㅋ약간 놀리듯이 말씀해주신다.
다만 할거면 우리나라 말고 미국에서 시작해봐라, 그쪽은 이미 지분이 많이 희석되었고 충분히 소수주주의 결집만으로도 경영권을 따낼 수도 있는 성숙한 시장이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펀드사들과 기업들에게 있어 또다시 소수주주들의 의결권이 효과가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아 이게 무슨 일일까ㅜㅜ 내 시간은 왜 이렇게 녹아있는걸까.
그래도 일단 벌려놓은걸 수습이라도 해봐야겠다. 아직 두번째 가설이 남아있지 않나!
가설 2. 주식을 담보로 한 앱테크는 주주들이 플랫폼에 유입되기에 충분한 동기일것이다.
주주 여러분이 매수한 주식에는 '의결권' 이라는 권리가 붙어있어요. 이 의결권을 가지고 있는 것 만으로 의결권 수에 비례해서 포인트를 드릴 예정이에요!
포인트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이더리움 ERC-20 토큰으로 표현되며 이로써 새로운 수익화 시장을 만들어드릴 계획이에요
나는 의결권에 비례해 리워드를 지급할 생각이었으므로 고유함을 보장해야했다.
고유함 하면 무엇인가, 바로 블록체인! 마침 가지고 놀던 ERC-20 프로토콜로 뭔가 해보고 싶었는데 이참에 잘되었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더 나아가 ICO 까지 생각하게 되었고 백서 쓸 생각에 다시금 신이 났다.
유저들은 플랫폼에 각자의 토큰지갑을 가지고 주주인증을 하여 보유주식에 대한 토큰을 발급받는다. (이 때 고유값은 주식이 아닌 매매기록으로 한다)
마지막 인증 후 이전 총 보유량과 인증 후 보유량이 상이하다면 해당 유저+거래소+종목의 토큰은 소각되고, 여전히 같은 양의 주식을 보유 하고 있다면 토큰을 유지한다. 이 단계에서 정상적으로 토큰이 유지되었다면 그에 비례한 리워드를 지급한다.
여기까지는 정상적인 플랫폼 내에서의 계약 흐름이고, 이제 이것이 인증을 통해 소각되지 않은 상태로 ICO 되어 유통된다고 생각해보면 무척 재밌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애초에 리워드라는 형태로 가치가 있는 토큰인데, 리워드를 받지 않고도 가치가 생기는 것. 그럼으로써 채굴을 위한 주주들이 플랫폼에 유입되고 플랫폼에서 지급하는것 이상의 가치를 가져버린다면, 그런 재밌는 큰 그림을 마음속으로 그려봤다.
그치만 일단은 한명이라도 쓰게 만드는게 먼저가 아닐까 하여
일단 홍보용 페이지를 뚝딱 만들어봤다.
먼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마케팅을 해보기로 했다. 왜 메타의 SNS 냐고 한다면 지난 해커톤때 한번 써보기도 했었기 때문이었을까 싶다. 이것마저도 잘못되어 있었지
아무튼 돌려봤다. 14일, 그러니깐 2주일동안 매일 5000원씩
그리고 그 결과는 일단 두가지의 데이터를 보여주고 있었다.
첫째로 인스타그램의 광고 타겟팅을 아무리 열심히 해놔도 내가 원했던 주식에 관심이 있고, 한번 이상 매매를 해본 사람의 코호트보다는 여성, 패션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광고를 클릭한 파이차트 또한 여성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자료 받기, 단 한명도 이메일을 입력하지 않았다.
기록 겸 여기에라도 올려야지 ...
광고문구에 문제가 있었나? 싶어 돌아가서 확인해본다.
딱히 A/B 테스트를 해본게 아니라서 모르겠다(혹시 붉은색이라 그런것은 아닐까 하는 사회학적인 궁금증이 들긴 했다)
무엇보다도, 이미 주식과 관련없는 참여자가 대부분이라는 것을 알아버린 이상 더 이상 실험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했다.
지금까지 뭘 했나
여기까지 나는
1. 각종 지원사업에 도전하여 정부지원이라는 카테고리를 경험했고
2. 유저가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다.
3. 마케팅을 위한 랜딩 페이지를 만들었고
4. SNS 광고를 진행해보았다.
이제보니 진짜 중요한 서비스 운영과 고객 피드백 루프는 돌려보지도 않았다는 뜻이다. 아둔한 나자신
더 잘해보고 싶은 마음도 아직 몽글몽글 있기는 하다.
그러던 와중 앤틀러 코리아의 마지막 파트너 인터뷰 날이 다가왔다.
파트너님은 다음과 같이 진단해주셨다.
- 인스타그램보다 주식과 관련된 커뮤니티에 찾아가서 홍보해보라
- ICO 를 통한 BM 은 잘 모르겠다.
- 시장을 먼저 분석해보았어야 했다.
- 행동력은 좋지만 왜 안되고 있는지 왜 나는 할 수 있는지를 먼저 생각해보라.
충분히 매력적인 아이템이라고 해주셨고, 더 좋아질 방향도 제시해주셨다. 너무 재밌었고, 감사한 인터뷰였다. 이 이야기는 앤틀러 코리아의 배치를 마치고 난 후 회고도 할 예정이니 그때 다시 돌아와서 그려보겠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이 아이템을 멈추려고 한다.
이 아이템에 무언가 원동력이랄게 없어졌다. 무척 하고싶었던 사업도 아니고 함께 해주는 사람도 없다보니 뭔가 루즈해졌다. 그리고 더 이상 누군가를 설득할 자신이 없어졌다. 나조차도 못한다면 놓아줄 때가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을 위해 마이데이터 사업 컨설팅을 받을 예정이었는데 가서 뭐라고 해야할지 ...
물론 받아서 나쁠건 없으니 최대한 스펀지처럼 빨아들여오겠다ㅋㅋㅋ
그럼 뭘 배웠나
이번 경험으로 내가 배운건 다음과 같다.
- 아이디어가 생각났다면, 시장 검증부터 하자.
- 페이크테스트는 저렴하다. 무조건 해보자
- 무작정 만들지좀 말고 한명이라도 쓰는 사람을 먼저 만들자.
- 코파운더 구하자. 회초리를 쥐어주자.
당장 지금 밀고 있는 아이템도 마냥 만들기부터 시작하려고 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일단 사용자를 만나보기로 했다.
일단 이번 외주작업을 통해 프리토타입을 돌려볼 예정이다.
부디 이번건 실패회고를 할 필요가 없어졌으면 좋겠다.
아니 근데 난 대체 왜 몸으로 배워야만 깨닫는걸까!!!! 분명 책에서 제대로 읽었는데 ...
https://hsol.tistory.com/990#생각랜드를%20탈출하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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